결혼은 도박이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이 말하는 사랑의 3단계

목차
- 결혼이라는 도박, 사랑은 단일 감정이 아니다
- 결혼 이전, 사랑의 원형은 이미 정해져 있다
- 결혼 생활을 회피하고 싶은 순간, 도피는 답이 아니다
- 결혼을 지속시키는 힘은 열정이 아니라 기술이다
- 결혼할 준비란 완벽한 짝을 찾는 것이 아니다
결혼이라는 도박, 사랑은 단일 감정이 아니다
우리가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하는 ‘사랑의 민낯’ 을 해부했다는 생각이 드는 책입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익숙한 사랑이 시작하는 모습이 아닌, 결혼이라는 ‘지속되는 관계’에 대해 지극히 현실적이고 사적인 내용을 다룬 알랭 드 보통의 소설입니다. 몇 번을 다시 읽어도 새로운 문장이 눈에 들어오는 소설입니다. 사랑이란 형상은 감정이 발생하는 시점부터 시작됩니다. 사춘기부터 시작되는 그 감정이 한 사람의 평생을 관통한다는 것, 그리고 아주 사적이라 서로 공유하기 힘든 부분까지 작가가 솔직하게 꺼내 보여준다는 점이 알랭 드 보통의 소설을 좋아하게 되는 대표적인 이유입니다.
우리는 보통 사랑을 그저 아름다운 단일 감정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책을 보면 사실 사랑은 사람이 느끼는 폭넓은 감정 스펙트럼 모두를 담은 감정 복합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소설이 다른 로맨스 서사와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은,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이 아니라 그 이후, 즉 그 지속되는 국면에 집중한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랑 이야기가 두 사람이 맺어지는 순간 막을 내리는 것과 달리, 이 소설은 바로 그 지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 과정을 통해 사람은 성숙하고, 가정을 이룬다는 것이 새로운 책임을 형성하며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를 재정립하게 만든다는 이 소설의 관점은, 누구에게나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깨달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같은 여정을 겪어도 그 안에서 깨닫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끝내 깨닫지 못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결혼 이전, 사랑의 원형은 이미 정해져 있다
이 책 초반에 저자는 사랑의 형태가 생각보다 일찍 결정된다고 말합니다.
사랑에 대한 그의 이해는 앞으로 몇십 년 동안 열다섯 살 여름 카사알수르 호텔에서 처음 형성된 바로 그 구조를 유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p14
이 문장을 보며, 내가 무의식중에 반복하는 사랑의 패턴은 무엇인지, 그 원형은 어디서 왔는지 고민하게 되었네요. 열다섯 살 여름의 경험이 평생의 사랑의 틀을 만든다는 이 설정은, 우리가 성인이 되어 만나는 모든 관계에 사실은 훨씬 어린 시절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을 수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합니다. 지금의 연인에게 느끼는 감정의 결이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면, 어쩌면 그 익숙함의 뿌리가 아주 오래전 어느 여름날로 이어져 있을지도 모릅니다.
결혼 생활을 회피하고 싶은 순간, 도피는 답이 아니다
소설은 결혼 생활 중반, 권태와 갈등이 찾아왔을 때 주인공이 택하는 선택도 가감 없이 보여줍니다.
베를린에서 그를 이끈 것은 다른 사람의 삶 속으로 새롭지만 제한적으로 진입해 결혼 생활의 문제를 회피해보겠다는 갑작스러운 바람이었다. 그러나 이제 와 깨닫게 되었듯이, 그런 희망은 허튼 감상에 불과했고 관련된 모든 사람에게 패배와 상처를 입힐 수 있는 잔인한 것이었다.
이 생활이 힘들어질 때 다른 곳에서 위안을 찾으려는 유혹은 소설 속 주인공만의 특별한 이야기가 아닐 겁니다. 그런데 저자는 이 도피가 결국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고, 오히려 관련된 모두에게 더 큰 상처를 남긴다는 것을 냉정하게 짚어냅니다. 문제로부터 잠시 멀어지고 싶은 마음과, 그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풀어내야 하는 책임 사이에서 흔들리는 것이야말로 그 시기 중반에 누구나 겪을 법한 갈등이라는 점에서, 이 장면은 유독 현실적으로 다가옵니다. 도피가 순간의 위안은 줄 수 있어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 그쪽으로 마음이 기우는 것, 그것이 인간이 지닌 나약함의 한 단면일 겁니다. 이 제도가 왜 필요한지에 대한 저자의 설명도 이 지점에서 등장합니다.
관계자들의 감정에 잠깐씩 일어나는 그 모든 변화에 낱낱이 주목하지 않고 한 해 한 해 굳건히 버틸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해 존재하는 제도로서 말이다.
매 순간의 감정 기복에 일일이 반응하다 보면 어떤 관계도 오래 지속되기 어렵습니다. 이 제도는 그 순간의 흔들림을 견뎌내고 한 해 한 해를 버틸 수 있게 해주는 구조적 장치라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감정만으로는 도저히 버텨낼 수 없는 순간들이 찾아올 때, 감정이 아니라 제도가 그 공백을 메워준다는 이 발상은 낭만적이지는 않지만 훨씬 현실적입니다.
결혼을 지속시키는 힘은 열정이 아니라 기술이다
작가는 사랑이 뜨거운 감정에서 멈추지 않고, ‘기술’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사랑을 방법이 아니라 감정 하나로만 여겨온 사람에게는 다소 차갑게 들릴 수 있는 표현이지만, 결혼이라는 오랜 관계를 지속해본 사람이라면 이 표현에 더 깊이 공감하게 될 겁니다.
사랑은 단순한 열정을 넘어 기술이라는 것 말이다.
p262
책을 읽으며 가장 깊게 고민하게 된 지점은 바로 ‘결혼’ 에 대한 부분입니다. 대부분의 내용은 주인공이 완벽한 짝이라 생각한 운명적 사람과의 만남, 그 이후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보여줍니다. 연애 초반의 설렘이 아니라 그 이후 수십 년에 걸친 일상, 권태, 갈등, 화해의 반복을 이렇게 가감 없이 다룬 작품은 흔치 않다는 생각도 듭니다.
저자는 결혼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결혼 : 자신이 누구인지 또는 상대방이 누구인지를 아직 모르는 두 사람이 상상할 수 없고 조사하기를 애써 생략해버린 미래에 자신을 결박하고서 기대에 부풀어 벌이는 관대하고 무한히 친절한 도박
p65
이 문장을 읽으며 한편으로는 완벽함을 추구하는 한국 사회에서 이 제도가 가진 자본주의적, 사회적 성격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회에서 짝을 이루지 못하면 어딘가 도태된 사람처럼 여겨지는 시선이 싫어서 그것을 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그 관계 자체를 원해서 하는 것인지 여전히 명확하게 답하기 어렵습니다. 이 제도가 주는 압박감이 싫어 얽매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분명히 있는데도, 정작 그 결정을 미루는 스스로를 보면 남들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이 생각보다 훨씬 크게 자리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묻게 됩니다. 오로지 감정만으로 이것을 결심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그보다 사회적 지위나 자본주의적 조건이 더 크게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런 제도가 때로 너무 답답하고 얽매이는 것처럼 느껴져 달갑지 않으면서도, 정작 그 제도 바깥에 서는 것을 선뜻 선택하지 못하는 모순적인 마음도 함께 자리합니다.
완벽한 만남은 존재하지 않으며 누구나 결함이 있고 소설의 주인공들 처럼 누군가 행복하냐는 물음에 쉽게 답하기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지만 그럼에도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때로는 즐거움과 행복이 순간 임에도 지속할 수 있는 관계, 노력하는 관계로 만드는 것이 결혼이란 제도이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네요. 행복이 지속적인 상태가 아니라 순간순간 스쳐 지나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면, 결혼을 바라보는 부담도 조금은 가벼워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책을 덮으며, 여러 방면으로 고민할 기회가 되었지만, 여전히 ‘결혼을 꼭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사실 불명확합니다. 답을 주기보다 스스로에게 질문 던지는 법을 배운 시간이었고 주변과 내 가족을 다른 시선으로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내 아이가 있다면’을 상상해볼 때도, 솔직히 아직은 그 존재가 애틋하게 다가오기보다 하나의 막연한 물건처럼 그려질 뿐입니다. 그것을 하고 아이를 낳는 이 일련의 과정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이 생각해봐도 ‘꼭 해야 하나’라는 물음표가 여전히 강하게 남습니다. 답을 억지로 찾기보다, 이 질문을 계속 붙들고 있는 것 자체가 이 소설이 남긴 가장 정직한 숙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른들이 자세히 말해주지 않는 ‘사랑의 민낯’을 보여주며 20, 30대에게는 그 기준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고, 그 이후의 세대에게는 공감과 위로를 주는 책이라 느꼈습니다. 이것을 이미 겪어본 사람에게는 지나온 길을 되짚어보는 거울이 되어주고, 아직 그것을 고민하는 사람에게는 낭만적 환상을 걷어낸 자리에서 다시 질문을 시작하게 해주는 책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답을 정해주지 않는 책일수록 오래 곱씹게 된다는 것을, 이 소설을 덮으며 다시 한번 실감했습니다.
낭만적인 모습만 비춰주는 해피엔딩 사랑 이야기가 지겹다면 추천합니다.
결혼할 준비란 완벽한 짝을 찾는 것이 아니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저자는 ‘결혼할 준비’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뜻밖의 정의를 내립니다.
라비와 커스틴이 결혼할 준비가 된 것은 그들이 서로 잘 맞지않는다고 가슴 깊이 인식하기 때문이다.
완벽하게 맞는 짝을 만나야 준비가 된다는 통념과는 정반대의 이야기입니다. 오히려 서로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그 여정을 시작할 준비가 된다는 것입니다. ‘운명의 상대’를 찾는 것이 이것의 전제조건이라 믿어온 사람이라면, 이 문장 하나가 그에 대한 오래된 환상을 조용히 무너뜨릴지도 모릅니다. 완벽한 짝을 기다리며 계속 저울질하는 것보다, 이미 곁에 있는 사람과의 다름을 어떻게 다뤄나갈지를 고민하는 편이 훨씬 현실적인 질문일 수 있습니다. 이 역설적인 문장이야말로 이 소설 전체가 하려는 이야기를 가장 압축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결혼은 완벽한 상대를 찾아 안착하는 종착지가 아니라, 서로 다른 두 사람이 그 다름을 견디고 조율해가는 지속적인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소설 초반의 ‘열다섯 살 여름’에 형성된 사랑의 원형도, 결국 이 지속적인 조율의 과정을 거치며 조금씩 수정되고 다듬어지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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