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매스의 부활, AI 시대를 예견한 다능인의 5가지 통찰

목차
- 폴리매스, 한 우물만 파라는 시대의 반박
- 폴리매스의 원형,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메모 습관
- 폴리매스가 사라진 이유, 전문가 시스템의 미신
- 폴리매스는 몸을 쓰는 사람이기도 하다
- 폴리매스가 지식을 다루는 방식, 맥락과 연결
- 폴리매스와 뇌 가소성, 나이는 핑계가 될 수 없다
- 폴리매스가 갖춰야 할 균형, 신념과 현실 감각
폴리매스, 한 우물만 파라는 시대의 반박
‘전문화’가 성공 공식처럼 여겨지는 시대에, 이 책은 정반대의 이야기를 합니다. 여러 분야를 넘나드는 사람, 폴리매스(다능인)가 오히려 다음 시대의 주인공이 될 거라는 주장입니다. 2020년에 초판이 나온 책인데도 지금 읽으니 예사롭지 않습니다. 팬데믹 직전에 쓰인 책이 이후 몇 년간의 기술적 격변을 이렇게 정확히 짚어냈다는 사실만으로도 다시 펼쳐볼 이유가 충분합니다.
기계지능이 탄생하고 이른바 기술적 특이점이 도래하면 세상은 폴리매스가 부흥하는 시대를 목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p31
AI 시대가 본격화되기 전에 이미 이 다능인의 부상을 예고하고 있었다는 점이 소름 돋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흐름을, 저자는 몇 년 전부터 내다보고 있었던 셈입니다. 책은 AI의 발전 방향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전망을 덧붙입니다.
현재 인공지능은 특정 분야에 전문화되어 있지만 옥스퍼드대 인류미래연구소의 닉 보스트롬에 따르면, ‘초지능’ 기계가 머지않아 초인간적 수준의 지능을 갖게 된다.
지금의 AI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하기 전부터, 소수의 지식인들은 이미 이 흐름을 예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충격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짜여진 알고리즘이 던져주는 정보에만 눈을 돌릴 것이 아니라, 스스로 정보를 찾고 깨달음을 얻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폴리매스의 원형,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메모 습관
책은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대표적인 폴리매스로 소개하는데, 그의 습관 하나가 유독 눈에 들어왔습니다.
다 빈치는 메모광이었으며 그가 평생 메모한 내용을 보면 철학, 광학, 기하학적 원근법, 해부학, 비행 원리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관찰하고 생각한 내용을 광범위하게 기록했다.
p41
제가 옵시디언에 공부하고 경험한 것을 꾸준히 기록해두는 이유도 이것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록은 흩어진 생각을 붙잡아두는 유일한 방법이니까요. 기억과 지식을 결합해 얻은 통찰이야말로 우리가 지식을 획득하는 주요 원천 중 하나라는 책의 설명도 같은 맥락입니다. 이런 결합의 과정이야말로 예술을 탄생시키고 인간의 발전을 도모하는 원동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성배의 숨겨진 의미, <다빈치 코드>가 파헤친 300년 마녀사냥의 진실 – Wellness builder
폴리매스가 사라진 이유, 전문가 시스템의 미신
그런데 왜 우리 시대에는 폴리매스가 드물어졌을까요? 저자는 ‘전문가 시스템’이 만든 미신이라고 짚습니다.
경제학의 ‘보이지 않는 손’과 마찬가지로 전문가 시스템을 통해 가장 이득을 보는 자들이 이를 장려하고 유지하면서 이 미신은 생명력을 얻었다.
p151
한국 사회를 보면 유독 이 말이 와닿습니다. 전문 직종에 종사할수록 그 바깥의 일에는 오히려 무지한 경우를 많이 봅니다. 전문화가 능력의 증거가 아니라, 시스템이 우리에게 강요한 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처음 해봤습니다. 책은 이 전문화 시스템을 정치·경제 구조와도 연결 짓습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정부 관료제와 기업 관료제는 상반되어 보이지만 사실은 동류이며, 이들 제도가 “의사, 변호사, 사제, 시인, 과학자를 임금 노동자로 전락시켰다”고 한탄했다.
관료제라는 것이 결국 사람을 정해진 직무 하나에만 최적화시키는 시스템이라면, 이런 기질은 그 시스템 안에서 오히려 비효율로 취급받기 쉽습니다. 저자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인간이라는 종의 본성 자체가 전문화와는 거리가 멀다고 주장합니다.
모리스가 주장한 대로 ‘털 없는 원숭이'(즉 인간)는 실제로 가장 전문화되지 않고, 적응력이 뛰어나며, 기회주의적인 동물이다.
인류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유도 한 가지 능력에 특화되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어떤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는 만능성 덕분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 타고난 본성을 거스르면서까지 한 우물만 파도록 스스로를 몰아붙이고 있는 것인지 다시 묻게 됩니다. 본성을 거스르는 방향으로 시스템을 설계해놓고, 그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을 도리어 부적응자로 낙인찍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폴리매스는 몸을 쓰는 사람이기도 하다
책은 폴리매스를 단순히 ‘박학다식한 사람’으로만 그리지 않습니다. 몸을 쓰는 방식에서도 우리 시대에 강한 경고를 남깁니다.
“앉아서 일하는 것은 또 다른 흡연 습관이다. 앉아서 일하는 시간이 길수록 건강에 더 해롭다”
독설적인 표현이지만 정확히 와닿는 문장입니다. 몸을 움직이고 싶어 하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구를 억누른 채 하루 종일 앉아만 있는 생활 방식이, 담배만큼이나 은밀하게 건강을 갉아먹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능인이 지적 영역에서만 다재다능한 존재가 아니라, 몸과 정신을 함께 쓰는 존재로 그려진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폴리매스가 지식을 다루는 방식, 맥락과 연결
책이 가장 힘주어 강조하는 지점은 지식을 ‘맥락’ 속에 두는 것입니다.
맥락 없이 전달되는 지식은 죽은 지식이다.
p164
이 문장을 보며, 제가 지식을 낱개로 쌓아두기만 하고 서로 연결 짓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옵시디언으로 노트를 잇는 습관이 바로 이 ‘죽은 지식’을 살려내는 작업이라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다중 경력을 쌓아갈 때 우리는 남들은 보지 못하는 연결점을 발견하고, 한 분야의 전문가로만 살았더라면 떠올리지 못했을 창의적 돌파구를 떠올릴 수 있다.
p363
이 문장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라고 느꼈습니다. 여러 분야를 오가는 것은 산만함이 아니라, 남들이 보지 못하는 연결점을 찾아내는 능력이라는 것. 돈이 안 되는 배움에 시간을 쓴다는 주변의 시선에도 흔들리지 않을 이유를 이 책에서 얻었습니다. 책은 이 연결의 힘을 단면적 사고와 입체적 사고의 차이로도 설명합니다.
단면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에게 언제나 전체는 각 부분의 총합과 일치할 것이다. 폴리매스는 다양한 부분들을 종합하는 과정에서 창의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므로 전체의 크기와 가치가 향상한다.
맥락 없는 지식을 아무리 많이 합쳐봐야 그 총합은 결국 거기서 거기입니다. 하지만 단면적 사고가 아니라 입체적으로 연결하는 사고는 배수를 만들어냅니다. 단순한 합이 아니라 배수, 혹은 제곱에 가까운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며, 그렇게 만들어진 통찰의 총합에는 끝이 없습니다.
폴리매스와 뇌 가소성, 나이는 핑계가 될 수 없다
여러 분야를 오가는 삶이 정말 나이가 들어서도 가능한 것인지 궁금해질 때쯤, 책은 신경과학의 최신 발견을 근거로 답을 건넵니다.
“뇌는 신경 회로를 재조직한다. 하나의 동일한 작업을 다른 부위에서 넘겨받아 수행할 수 있고 이를 위해 기존의 것과 다른 신경 회로나 신경망을 이용한다. 여기에 인간의 잠재력이 존재한다.” 다만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뇌를 자극하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보다는 이미 아는 것을 강화하려는 공통적인 경향을 보인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게 아니라, 이미 아는 것에 안주하려는 습관이 굳어지는 것일 수 있습니다. 다행히 책은 이 습관이 뇌 구조 자체의 한계는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신경과학자들은 뇌가 평생에 걸쳐 가소성을 어느 정도 유지하고, 나이가 많아도 자신의 부족한 점을 극복하는 방법을 새로 배울 수 있음을 발견했다.
나이가 들면 새로운 것을 못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한 가지 익숙한 방식에 스스로를 가둬버리는 것일 수 있다는 이 발견은 꽤 큰 위안이 됩니다. 변화에 대한 책의 통찰도 같은 결로 이어집니다.
“사람들은 삶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과소평가한다”고 주장한 길버트는 우리 인생에서 유일한 상수가 있다면 그것은 ‘변화’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우리의 착각과는 달리 인간은 완성품이 아니라 여전히 진행 중인 미완성이다.”
언뜻 모순되는 말처럼 들리지만, 곱씹을수록 참된 명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인생에서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변화한다’는 사실 그 자체라는 것입니다.
폴리매스가 갖춰야 할 균형, 신념과 현실 감각
여러 분야를 넘나드는 삶에는 필연적으로 주변의 회의적인 시선이 따라붙습니다. 책은 이 지점에서 솔직한 조언을 건넵니다.
자신이 고유한 본질을 찾아 나가는 과정에서 필요하다면 ‘미친 사람’ 소리를 들을 각오도 해야 한다.
주변에서는 왜 돈도 안 되는 일에 시간을 쓰며 투자를 하냐고 묻지만, 결국 모든 배움과 지식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언젠가 새로운 통찰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다만 책은 이 믿음이 현실 감각을 잃는 것과는 다르다고 분명히 선을 긋습니다.
진정한 폴리매스라면 확고한 자기 신념과 현실 감각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일이 핵심이다. 테디 루스벨트는 말했다. “시선은 하늘의 별에, 발은 땅바닥에 고정하라.”
가끔은 확고한 자기 신념에 사로잡혀 현실 감각을 잃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별을 바라보되 발은 땅에 붙이고 있어야 한다는 이 균형 감각이야말로, 여러 분야를 오가면서도 삶을 지탱할 수 있게 해주는 핵심 원칙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필요해서 하는 일과 열정으로 하는 일을 번갈아 하는 것도 이 균형의 실천 방법 중 하나입니다.
아제르바이잔 출신의 폴리매스 햄릿 이사칸리에 따르면 꼭 필요해서 하는 일과 열정으로 하는 일을 번갈아 하면 정신 건강에 좋다.
한 가지 일에만 매몰되는 것은 매너리즘에 빠지기 좋은 길이라는 것을, 이 문장은 담담하게 확인시켜줍니다. 한 가지 일에만 매몰되기보다, 호기심이 이끄는 대로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배우고 있다면, 그리고 그 방향이 맞는지 스스로 의심해본 적이 있다면 폴리매스라는 개념을 통해 이 책을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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