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발견이지 추구가 아니다

행복은 발견이지 추구가 아니다, <책은 도끼다>가 건네는 7가지 질문

행복은 발견이지 추구가 아니다
행복은 발견이지 추구가 아니다

목차



행복을 다시 묻게 만드는 도끼 같은 책

빠르게 사는 것이 미덕처럼 여겨지는 시대에, 이 책은 속도를 늦추고 진짜 행복이 무엇인지 다시 물으라고 말합니다. 꽃이 피고 지는 것 하나 제대로 보지 못하고 사는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광고 일을 오래 해온 저자가 결국 다다른 결론이 ‘속도를 늦추라’는 것이라는 점도 의미심장합니다. 누구보다 빠르게 트렌드를 좇아야 하는 자리에 있던 사람이, 정작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느리게 들여다보는 시선이라고 말하는 셈입니다. 그래서 이 책의 조언은 현학적인 충고가 아니라, 속도의 최전선에서 살아본 사람의 반성문처럼 읽힙니다.

우리는 정말 빠른 속도로 살아가요. 꽃 피고 지는 것 하나 제대로 보지 못하고 말이죠.

책은 건축, 문학, 인문고전을 넘나들며 우리가 쉽게 지나치는 것들 속에 담긴 생각을 하나씩 꺼내 보여줍니다. 계단 하나에도 철학이 있다는 이야기가 대표적입니다.

계단의 높이는 다르지만 한 곳은 속도를 늦추고 한 곳은 시선을 돌려놓는 것으로 잠시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문장은 역시 책의 제목이 된, 프란츠 카프카의 편지에서 따온 부분입니다.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 되는 거야.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는 시선, 그것이 독서가 우리에게 주는 도끼질이라는 것입니다.

행복은 견자(見者)의 시선에서 시작된다

책은 이 ‘낯설게 보기’를 시인이라는 존재와 연결 지어 설명합니다.

옛날에는 시인을 볼 견(見)자를 써서 견자(見者)라고 했다죠. 들여다보는 사람, 삶을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다른 사람들이 못 보는 것을 발견하는 사람이 바로 시인이라는 뜻일 겁니다.

행복도 결국 ‘발견’의 문제라면, 시인처럼 삶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시선이야말로 그것을 얻는 첫 번째 기술이라는 결론에 다다릅니다. 책은 이 시선의 소중함을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에 빗대어 다시 강조합니다.

우리는 죽음이 임박했을 때 갑자기 삶에 대한 애착이 생깁니다.

죽음이라는 찰나에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것들이 삶에 대한 애착의 증거 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책은 이 애착이 삶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였다는 걸 짚어줍니다.

삶이 그렇게 힘들다고 하면서도 실상 죽음을 반기지 않는다는 건 삶의 문제가 아니라 내 태도의 문제였다는 걸 증명해주는 거예요. 우리가 시간을 잃어버리며 살고 있다는 겁니다.

행복은 선택이고 발견이다

행복에 대한 이야기가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행복은 선택이다.

‘행복은 추구의 대상이 아니라 발견의 대상이다.’

같은 상황과 조건이어도 내 욕심과 시선에 따라 만족할 수도, 불행할 수도 있다는 것. 결국 그것은 저 멀리서 찾아야 할 무언가가 아니라 일상 속 소소한 것에서 발견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이 발견의 기쁨은 비단 일상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문장 속에서 나와 닮은 생각을 마주할 때도 찾아옵니다.

나의 생각과 같은 접점을 발견하는 기쁨도 독서의 기쁨 중 하나입니다.

막연히 혼자만 하는 생각인 줄 알았던 것을 어느 책의 한 문장에서 그대로 발견할 때, 우리는 ‘나’를 이해해줄 사람이 세상에 충분히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게 됩니다. 나만 이상한 생각을 하는 게 아니었다는 안도감, 그것만으로도 책 한 권 값은 충분히 하는 셈입니다. 책은 이 발견의 순간을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의 순간

세상의 중심이 지구가 아니라 태양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던 그 충격적인 전환처럼, 익숙하게 믿어온 것이 뒤집히는 순간이야말로 진짜 독서의 재미이자 그 정의를 다시 세우는 계기가 됩니다.

행복을 방해하는 소유와 사랑에 대한 오해

사랑에 대해서도 알랭 드 보통을 인용하며 다른 시각을 건넵니다.

알랭 드 보통은 그래서 사랑이 방향일 뿐 공간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연민에 대한 밀란 쿤데라의 해석도 이 주제와 맞닿아 있습니다.

연민으로 사랑을 시작해 한없이 작아진 남자, 밀란 쿤데라는 이 사랑이야말로 진짜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연민, 즉 동정심은 타인의 불행을 함께 겪을 뿐 아니라 환희, 고통, 기쁨, 고민과 같은 다른 모든 감정도 함께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감정이입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가장 최상의 감정이라는 겁니다.

책은 사랑을 향한 인간의 방황도 다른 각도에서 이해해보라고 권합니다.

바람기는 다른 말로 ‘다른 생에 대한 동경’ 이에요.

선택하지 않은 기회에 대한 미련이 결국 욕심으로 자라난다는 것입니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면, 적어도 그 미련이 지금의 삶을 갉아먹지 않도록 다스리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사람이란 나무와 같아서, 각자 맺을 수 있는 열매가 다르다는 비유도 같은 맥락에서 등장합니다.

”(…) 사람이란 나무와 같소 당신도, 버찌가 열리지 않는대서 무화과나무와 싸우지는 않겠지?“

내가 맺을 수 없는 열매를 억지로 바라기보다, 내가 원래 맺을 수 있는 열매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 이것 역시 그 감정을 소유가 아니라 발견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해주는 문장입니다. 남들이 맺은 열매를 부러워하느라 정작 내가 이미 가진 나무를 돌보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돌아보게 됩니다.

책이 마지막으로 남기는 문장은 소유에 대한 것입니다.

’무엇인가를 늘 소유한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소유를 당하는 것이며,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뜻이다.‘

미니멀리즘에 대해서 생각했던 핵심 부분이기도 합니다. 무언가를 붙잡고 있다고 믿지만 실은 그 무언가에 붙잡혀 있는 것일 수 있다는 이 역설은, 사랑에 대한 또 다른 문장과도 이어집니다.

‘우리는 불충분한 자료에 기초하여 사랑에 빠지며, 우리의 무지를 욕망으로 보충한다.’

상대를 완전히 알지 못한 채로 사랑에 빠지고, 그 빈틈을 욕망으로 채워 넣는다는 이 통찰은, 사랑도 결국 대상을 온전히 소유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된 감정일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소유하려 할수록 오히려 얽매이게 되는 역설은 사랑에서도, 물건에서도 똑같이 반복됩니다. 무언가를 완전히 소유했다고 느끼는 순간, 오히려 그것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마음에 스스로 얽매이게 되는 것입니다.

행복은 직선이 아니라 원의 세계에 있다

책은 인간과 동물이 시간을 대하는 방식의 차이에서도 행복의 실마리를 찾습니다.

우리들은 직선의 세계를 사는데, 동물들은 원의 세계를 살고 있다는 겁니다.

인간은 과거에서 미래로 뻗어나가는 직선 위에서 늘 다음을 향해 달려가지만, 동물은 계절이 돌고 도는 원의 리듬 속에서 지금 이 순간을 삽니다. 목표와 성과를 향해 끝없이 달리는 직선적 삶의 방식이 오늘날 우리를 지치게 만드는 이유도, 원래는 원의 세계에 속했을 존재가 억지로 직선 위에 올라선 데서 오는 부조화 때문은 아닐까 싶습니다. 여행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습니다.

‘여행은 우리의 삶이 그리움인 것을 가르쳐준다.’

여행은 사건의 연속, 변화, 불안함, 새로움이라면, 일상은 반복, 단조로움, 안정감입니다. 직선의 세계에 갇혀 살던 우리가 여행이라는 잠깐의 일탈을 통해 원의 세계, 즉 반복되는 계절과 감각을 다시 느끼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햇빛 쏟아지는 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본 기억, 모두 있지 않으신가요? 저는 그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는데 이것을 김화영이 표현해낸 겁니다.

모든 것에 놀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일상의 반복 속에서도 매번 새롭게 놀랄 수 있는 감각, 그것이야말로 직선과 원, 두 세계를 동시에 사는 인간이 택할 수 있는 가장 지혜로운 태도일지 모릅니다.

행복은 성취를 향한 갈망 그 자체다

책은 행복을 정적인 상태가 아니라 움직이는 갈망으로도 정의합니다.

‘성취를 향한 갈망’이 진짜 행복인 것이죠.

무언가를 이미 다 이룬 뒤의 만족감보다, 무언가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 자체에 만족이 있다는 것입니다. 목표를 달성한 순간의 기쁨은 생각보다 짧게 스쳐 지나가지만, 그 목표를 향해 걸어가는 하루하루의 과정에는 훨씬 긴 시간의 기쁨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이 문장은 일깨워줍니다. 이 갈망은 지식과는 다른 결의 것이라고 책은 구분합니다.

확실히 지식은 바깥에서 들어오지만 지혜는 안에서 나오는 거라는 생각을 했죠.

지식은 아무리 쌓아도 바깥에서 계속 채워 넣어야 하지만, 지혜와 갈망은 내 안에서 스스로 자라나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책을 읽고 강연을 들어도 내 안에서 곱씹고 소화하는 과정이 없다면, 그것은 여전히 바깥에 머무는 지식일 뿐 내 것이 된 지혜는 아닙니다. 책의 마지막 문장은 이 모든 것을 하나의 오래된 문구로 정리합니다.

제법무아(諸法無我) 제행무상(諸行無常). 모든 것에 내가 없고, 모든 움직임이 같지 않다.

고정된 ‘나’도, 고정된 행복의 형태도 없다는 것. 그러니 그것은 붙잡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다시 발견해야 하는 것이라는 이 책의 결론과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어제의 만족이 오늘도 똑같이 유효할 거라 믿는 순간, 우리는 오히려 그것을 놓치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것을 소유나 성취의 결과로만 여기고 있었다면, 이 책이 그 행복의 정의부터 다시 묻는 첫 도끼질이 되어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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