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에 끌리는 이유, 호모 사피엔스에서 호모 데우스로 가는 3가지 본능

목차
- 메타버스, 기술이 아니라 본성의 문제
- 메타버스가 호모 사피엔스를 호모 데우스로 만든다
- 메타버스가 놀이를 통해 감정을 설계하는 방식
- 메타버스 몰입을 설명하는 뇌과학
- 메타버스와 거울 신경, 그리고 착시 현상
- 메타버스 시대에 필요한 능동적 망각
메타버스, 기술이 아니라 본성의 문제
메타버스를 그저 새로운 기술 트렌드로만 보면,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여기에 몰입하는지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이 책은 기술이 아니라 인간 본성에서 그 답을 찾습니다.
인간이 디지털 기술로 현실 세계를 초월해서 만들어낸 여러 세계를 메타버스라 합니다.
책은 먼저 인간이라는 존재의 정체성부터 되짚습니다.
현생 인류, 21세기를 살아가는 인간을 지칭하는 대표적 표현은 ‘호모 사피엔스’입니다. 생각하는 사람을 뜻하는 말입니다.
메타버스라는 개념 자체의 역사는 1990년대 소설에서 처음 등장했지만, 책이 정말로 파고드는 질문은 기술의 역사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종의 오래된 습성입니다.
메타버스가 호모 사피엔스를 호모 데우스로 만든다
저자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인간의 또 다른 본성인 ‘놀이’와 기술이 결합했을 때 어떤 존재가 탄생하는지를 말합니다.
인류의 역사, 인간의 모든 활성과 상호작용에는 기본적으로 놀이, 즐거움이 깔려 있다는 의미입니다.
즉, 호모 데우스는 신이 되려는 인간을 의미합니다.
생각하는 존재(사피엔스)가 놀이를 통해 스스로 세계를 창조하는 존재(데우스)로 넘어가는 지점, 그것이 메타버스라는 것입니다. 아바타를 만들고 가상의 공간을 꾸미는 행위는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스스로 하나의 작은 세계를 창조해보려는 아주 오래된 욕구의 디지털 버전이라는 것입니다.
이 관점은 왜 굳이 ‘메타버스’라는 새로운 용어까지 필요했는지도 설명해줍니다. 단순한 온라인 게임이나 SNS와 구분되는 지점은, 이 개념이 훨씬 더 총체적으로 ‘또 다른 세계’를 자처한다는 데 있습니다. 한 판의 게임이 아니라 일상의 연장선처럼 작동한다는 점이 이전의 디지털 콘텐츠들과 결정적으로 다른 부분입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인간은 늘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작은 세계를 만들어왔습니다.
아이들의 소꿉놀이, 신화 속 신들의 이야기, 종교적 세계관까지도 어떤 의미에서는 ‘내가 원하는 규칙으로 움직이는 세계’를 그려보려는 시도였습니다. 이것은 이 오래된 창조 욕구가 디지털 기술을 만나 가장 정교한 형태로 구현된 결과물에 가깝습니다. 현실에서는 바꿀 수 없는 조건들, 이를테면 외모나 신체 능력, 사회적 지위 같은 것들을 가상 공간에서는 원하는 대로 다시 설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안의 아바타는 단순한 캐릭터가 아니라 ‘내가 되고 싶은 나’를 실험해보는 무대가 됩니다. 현실의 제약이 클수록 이 실험이 주는 해방감도 커진다는 점에서, 이런 공간에 대한 몰입도는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메타버스가 놀이를 통해 감정을 설계하는 방식
책은 이 ‘놀이’라는 본능을 훨씬 구체적으로 파고듭니다.
인간은 놀이를 통해 대략 20개의 감정을 느낀다고 합니다.
단순히 즐겁다는 감정 하나로 뭉뚱그려지는 게 아니라, 놀이 안에는 승리감, 긴장감, 안도감, 소속감처럼 스무 가지에 달하는 세분화된 감정이 얽혀 있다는 것입니다. 메타버스 플랫폼들이 이렇게 다양한 감정을 촘촘히 설계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의 콘텐츠 안에 스무 가지 감정을 각각 다른 타이밍에 배치할 수 있다면, 이용자는 지루할 틈 없이 계속해서 새로운 감정의 파도를 타게 됩니다.
이런 증강 요소들은 우리가 많은 주의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우리에게 적절한 정보를 제공해주고, 우리의 이해와 감정을 콘텐츠 제공자가 의도한 방향으로 손쉽게 이끌어갑니다.
우리가 의식적으로 애쓰지 않아도 콘텐츠가 알아서 우리의 감정을 특정 방향으로 이끈다는 이 설명은, 왜 이런 플랫폼에 한번 들어가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되는지를 잘 설명해줍니다. 알림, 레벨업 효과음, 캐릭터의 미세한 표정 변화 같은 자잘한 증강 요소들이 우리가 미처 의식하기도 전에 다음 행동을 유도하고, 그 사이 우리는 스스로 선택했다고 느끼면서도 사실은 설계된 흐름을 따라가고 있는 셈입니다. 산업 현장에서도 비슷한 원리가 적용됩니다.
제품 생산 과정에 다양한 정보통신기술을 적용해서 생산 효율을 향상시킨 미래형 공장을 스마트 팩토리라 부릅니다.
스마트 팩토리가 물리적 생산 효율을 극대화하는 기술이라면, 메타버스는 그 기술을 인간의 감정과 경험이라는 영역으로 확장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공장이 원자재를 제품으로 바꾸듯, 그것은 이용자의 시간과 주의력을 몰입과 감정 경험으로 바꾸는 정교한 생산 라인에 가깝다는 비유도 가능합니다. 이 비유가 다소 냉정하게 들릴 수 있지만, 그만큼 이 설계가 우연이 아니라 치밀한 계산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메타버스 몰입을 설명하는 뇌과학
책은 이 몰입이 왜 이렇게 강력한지도 뇌과학으로 설명합니다. 실제로 우리를 끌어당기는 힘은 훨씬 오래된 본능에서 나옵니다.
뇌파 검사를 해보면 출력물을 읽을 때 우리 뇌의 뇌파는 여유 있는 안정 상태를 보이지만, 디지털로 읽을 때 우리 뇌는 흥분 상태가 됩니다.
디지털 콘텐츠가 우리를 더 쉽게 몰입시키는 이유가 단순한 재미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흥분 상태가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오랜 시간을 두고 보면, 우리에게 샛길로 빠지는 조금 멍청한 개미는 의미 있는 동반자입니다.
정해진 경로만 효율적으로 오가는 개미들만 있다면 새로운 먹이 경로를 발견할 확률은 낮아집니다. 가끔 엉뚱한 샛길로 빠지는 개미가 있어야 무리 전체가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메타버스 안에서의 흥분과 몰입, 때로는 ‘쓸데없어 보이는’ 탐험도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예상치 못한 발견과 연결의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목적 없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새로운 커뮤니티나 콘텐츠를 발견하게 되는 경험도, 어쩌면 이 ‘멍청한 개미’의 역할을 우리 각자가 대신 수행하고 있는 것일지 모릅니다.
메타버스와 거울 신경, 그리고 착시 현상
배달 앱 화면만 보고도 군침이 도는 이유 역시 같은 원리로 설명됩니다.
음식 냄새가 가득한 매장에 가서 음식을 주문하고, 주방에서 나오는 음식을 볼 때와 비슷한 감정을 배달 앱 화면만 보고도 느끼는 이유는 바로 거울 신경 세포가 있기 때문입니다.
거울 신경 세포는 타인의 행동을 마치 내가 하는 것처럼 시뮬레이션하는 뇌 세포로 알려져 있습니다. 화면 속 아바타의 행동에 감정을 이입하고, 가상의 공간에서도 실제와 비슷한 유대감을 느끼는 이유도 이 신경 세포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아바타가 웃거나 실망하는 모습을 볼 때 내 감정도 함께 움직이는 것은, 이 거울 신경 세포가 화면 속 존재와 실제 존재를 크게 구분하지 않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책은 여기에 흥미로운 심리적 착시 현상도 덧붙입니다.
인간은 어두운 곳에서 누군가를 만나면 상대의 표정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심리적 경계를 낮추는 경향이 있습니다.
노출 빈도가 가져오는 친밀감에 관한 착시현상이 있습니다.
상대를 자주 본다는 사실만으로 실제보다 더 친밀하다고 착각하는 이 현상은, 이 공간 안에서 아바타를 매일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현실의 인간관계 못지않은 유대감을 느끼게 되는 이유를 설명해줍니다. 실제로 만난 적 없는 상대라 해도, 매일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아바타로 마주치는 경험이 반복되면 뇌는 그 반복 자체를 신뢰와 친밀감의 근거로 받아들입니다.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경계심이 낮아지는 것처럼, 화면이라는 매개체 역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심리적 거리감을 조정하는 장치로 작동하고 있는 셈입니다. 결국 이곳은 화면 너머의 낯선 세계가 아니라, 우리 뇌가 원래부터 반응하도록 설계된 감정과 본능이 기술을 만나 증폭된 결과입니다.
인간의 뇌는 크게 세 가지 감정을 추구합니다. 세 가지 감정은 지배, 자극, 균형입니다.
메타버스 시대에 필요한 능동적 망각
책이 남기는 흥미로운 조언 중 하나는 ‘망각’에 관한 것입니다.
망각은 능동적,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식을 일시적으로 닫는 저지 능력이라 했습니다. 보다 고차원적이고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일시적으로 의식의 자리를 백지상태로 비우는 것이라 했습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과 정보가 쏟아지는 메타버스 환경에서는, 무언가를 더 담는 능력 못지않게 의도적으로 비워내는 능력이 중요해집니다. 동영상과 블로그를 합친 ‘브이로그’라는 형식 하나만 보아도, 우리는 이미 하루에도 수십 개의 새로운 형식과 자극을 소비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콘텐츠 형식이 등장할 때마다 우리의 의식은 그것을 처리하기 위해 계속 새로운 자리를 마련해야 하는데, 정작 그 자리를 비워주는 능동적인 과정 없이는 결국 과부하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망각이 수동적으로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닫는’ 행위로 설명된다는 것입니다. 무언가를 잊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 못지않게, 이제 그만 담아도 된다고 스스로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도 하나의 능력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공간처럼 자극이 끊이지 않는 환경일수록, 언제 접속을 끊고 의식의 창을 닫을지를 스스로 결정하는 훈련이 더 중요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동영상을 뜻하는 비디오와 블로그를 합친 개념이 브이로그입니다.
이것이 왜 이렇게 빠르게 우리 일상에 스며들었는지 궁금하다면, 기술이 아니라 인간 본성에서부터 시작하는 이 책이 좋은 출발점이 될 겁니다. 새로운 자극을 좇는 것 못지않게, 언제 의식적으로 화면을 끄고 비워낼지를 아는 것도 이 시대를 건강하게 살아가는 또 하나의 기술일지 모릅니다. 기술은 계속 빨라지겠지만, 그 기술을 다루는 인간의 본능은 여전히 아주 오래된 자리에서 출발한다는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다음에 새로운 플랫폼이나 서비스가 ‘메타버스’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더라도, 그 기술이 정확히 어떤 본능을 건드리고 있는지 한 번쯤 되짚어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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