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은 의지로 안 빠진다, <식욕의 과학>이 밝히는 몸의 방어기제 5가지
목차
- 식욕은 왜 의지로 안 되는가, ‘대사학’이라는 새로운 렌즈
- 지방세포는 왜 이렇게 쉽게 늘어나는가
- 몸이 체중을 지키는 이유, 설정값과 렙틴
- 우리가 속아온 진짜 이유, 지방이 아니라 설탕이었다
- 알코올·수면·스트레스, 매일이 식욕과의 싸움이다
다이어트에 실패할 때마다 우리는 스스로를 탓합니다. 의지가 약해서, 자기관리에 실패해서라고요. 그런데 영국의 비만대사수술 전문의 앤드루 젠킨슨이 쓴 《식욕의 과학》(원제 Why We Eat (Too Much))은 이 전제 자체를 뒤집습니다. 다윈이 수많은 종과 화석을 관찰해 진화론을 도출했듯, 저자도 임상 현장에서 만난 환자들의 몸이 보내는 신호를 촘촘히 관찰해 하나의 결론에 도달합니다. 식욕은 의식적으로 조절되지 않으며, 그런 생각만으로는 살을 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다이어트 산업과 미디어가 말해주는 대로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면 된다”는 단순한 공식을 믿어왔습니다. 하지만 정말 우리는 우리 몸이 왜 살을 찌우고 왜 다시 그 체중을 지키려 하는지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요? 어쩌면 우리는 상품을 사고파는 시장의 언어에 익숙해진 나머지, 정작 몸 안에서 벌어지는 진짜 메커니즘은 의심 없이 지나쳐온 것일지도 모릅니다.
일반적인 다이어트 책과 이 책이 다른 지점은 저자의 위치입니다. 마케팅 문구가 아니라, 고도비만 환자를 수술대 위에서 마주해온 외과의사의 시선에서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극단적인 체중 변화를 몸소 지켜본 임상 경험은, “왜 어떤 사람은 아무리 굶어도 원래 체중으로 돌아가는가”라는 질문을 개인의 의지 문제가 아니라 몸의 방어 시스템 문제로 다시 묻게 만듭니다. 이 책이 다이어트 자기계발서가 아니라 대사학이라는 새로운 렌즈를 제안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식욕은 왜 의지로 안 되는가, ‘대사학’이라는 새로운 렌즈
저자는 기존의 ‘대사(metabolism)’라는 말로는 부족하다며 아예 새로운 학문 이름을 만듭니다.
세포가 에너지를 다루는 과학적 ‘대사(metabolism)’의 앞부분과 ‘학문’을 뜻하는 접미사를 붙여서 ‘대사학(metabology)’이라 부르기로 하자.
p21
대사학은 식욕과 인체 대사, 지방의 저장·손실을 다루는 학문, 즉 몸 안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에너지 전체를 보는 관점입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왜 살이 찌는가”라는 질문은 “왜 의지가 약한가”가 아니라 “몸의 에너지 신호 체계가 지금 어떤 상태인가”라는 질문으로 완전히 바뀝니다. 다이어트를 개인의 도덕적 실패가 아니라 생리학의 문제로 다시 정의하는 이 지점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첫 번째 반전입니다.
지방세포는 왜 이렇게 쉽게 늘어나는가
지방이 쌓이는 과정도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모습과는 다릅니다.
저장된 에너지가 많을수록 세포는 부풀어 오르고 크기가 커진다. 살이 찌기 시작할 때는 지방 세포가 늘어나지 않는다. 세포 수는 그대로고 지방 세포마다 더 많은 에너지를 저장하면서 부풀어 올라 원래 크기보다 여섯 배까지 커진다. 그러다 세포 내부에 더 이상 에너지를 저장할 공간이 없으면 세포 수가 늘어난다.
p23
처음엔 있는 지방세포가 여섯 배까지 부풀어 오르다가, 그마저 한계에 이르면 그제서야 세포 수 자체가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지방에는 약 30일간 먹지 않아도 생존할 수 있는 에너지가 저장됩니다(p28). 인류가 불로 요리를 시작하면서 소화·흡수 효율이 극적으로 높아진 것도(p203), 이런 저장 시스템이 정교하게 발달할 수 있었던 배경 중 하나입니다. 몸 입장에서는 지방을 쌓는 것이 실패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설계된 대로 작동하고 있는 것뿐입니다.
몸이 체중을 지키는 이유, 설정값과 렙틴
이 책에서 가장 실전적으로 와닿는 부분은 ‘체중 설정값(set point)’과 렙틴 시스템입니다.
몸을 보호하는 음성 피드백 스위치는 체중이 10퍼센트 감소할 때 활성화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p53
체중이 일정 폭 이상 줄면 몸은 이를 위협으로 인식하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신호를 켭니다. 그 핵심 신호가 렙틴입니다.
따라서 지방이 많을수록 혈액에 분비된 렙틴의 양도 많다. 렙틴 자체가 인체에 지방을 얼마나 축적해야 하는지 시상하부에 알리는 신호로 작용한다.
p57
렙틴은 지방량을 뇌(시상하부)에 알리는 보고 체계입니다. 계절 변화가 이 신호에 영향을 준다는 가설(p60)이나, 따로 자란 일란성 쌍둥이의 성인 BMI가 약 75% 일치한다는 관찰(p83)은 이 체중 조절 시스템이 상당 부분 우리가 의식적으로 통제하기 어려운 층위에서 작동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포만감조차 뷔페에서 과식했을 때의 불편함이 아니라, 적당히 먹었을 때 찾아오는 감각이라는 저자의 정의(p145)도 같은 맥락입니다.
문제는 이 시스템이 한번 망가지면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다이어트로 감량했다가 요요가 온 사람은, 다이어트를 그만둔 지 1년이 지나도 식욕·포만감 신호가 여전히 고장 나 있었습니다(p148). 몸이 부상이나 질병으로 염증 반응을 겪을 때 렙틴 저항성이 함께 나타나는 것도 진화적으로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 저자는 설명합니다(p169).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한 문장이 있습니다.
꼭 기억할 점은 인체가 자발적인 다이어트와 식량 부족 또는 기근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p361
몸 입장에서는 ‘다이어트 중’이라는 우리의 의도가 전혀 전달되지 않습니다. 그저 “지금 에너지가 부족하다”는 신호만 받을 뿐입니다.
이 렙틴 신호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태를 ‘렙틴 저항성’이라고 부르는데, 관련 연구(The Mechanism of Leptin Resistance in Obesity and Therapeutic Perspective)는 뇌가 이 신호를 아예 받아들이지 못하게 막는 분자 수준의 기전(SOCS-3, 혈뇌장벽 수송 장애)까지 규명합니다. 이 책이 대중의 언어로 풀어낸 렙틴 시스템이, 실제로는 이렇게 구체적인 분자 기전으로도 뒷받침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우리가 속아온 진짜 이유, 지방이 아니라 설탕이었다
책의 후반부는 우리가 수십 년간 믿어온 영양학 통념을 정면으로 반박합니다.
만약 논문에 22개국 연구가 전부 실렸다면, 심장질환과 포화지방은 서로 의미 있는 상관관계가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을 것이다.
p242
포화지방이 심장질환의 주범이라는 통설의 근거가 된 연구 자체가 편향된 데이터 선택의 결과일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저자는 진짜 범인을 다른 곳에서 찾습니다.
심장질환의 궁극적인 원인인 죽상동맥경화증은 크기가 작고 밀도가 높은 A타입 LDL 콜레스테롤에 의해 발생한다. 최근에 발표된 연구 결과에서 A타입 LDL 콜레스테롤은 지방이나 콜레스테롤 섭취로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탄수화물과 설탕 섭취로 증가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p248
지방이 아니라 탄수화물·설탕이 진짜 위험 LDL을 늘린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몸에 좋다고 알려진 식물성 유지의 생산 방식이 원유 정제 공정과 다르지 않다는 지적(p256)까지 더해지면, 우리가 마트에서 무심코 고르는 “건강한” 식품 라벨을 다시 보게 됩니다.
이 책은 무엇을 피해야 하는지 못지않게 무엇을 챙겨야 하는지도 짚습니다. 풀을 뜯어 먹고 자란 동물, 그리고 그 동물을 먹는 포식자의 조직에는 오메가-3가 충분히 남아있어서, 우리가 그런 동물성 식품이나 채소·생선을 통해 오메가-3를 섭취하면 몸속 수치도 함께 유지됩니다(p299). 비타민B가 풍부한 음식이 대사 자체를 최적화한다는 대목(p412)도 같은 맥락입니다 — 무엇을 줄이느냐만큼, 무엇으로 그 자리를 채우느냐가 대사 시스템 전체의 작동 방식을 좌우한다는 것입니다.
알코올·수면·스트레스, 매일이 식욕과의 싸움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매일의 생활습관이 이 시스템을 어떻게 흔드는지 짚습니다. 알코올은 지방·탄수화물처럼 저장되지 못하고 몸이 독소로 처리하는 물질이라, 대사되는 과정에서 방출되는 NADH가 오히려 에너지 대사를 흐트러뜨립니다(p342). 게다가 알코올은 혈당과 코르티솔에 영향을 줘 식욕 자체를 끌어올립니다(p345). 수면도 마찬가지입니다.
즉 렙틴 수치가 떨어진 것은 전적으로 수면 패턴이 바뀐 결과였다. 렙틴 농도가 감소하면서 빠진 체중이 다시 늘어날 뿐만 아니라 체중 설정값이 상향 조정되어 체중이 증가된다.
p378
잠이 부족해지면 렙틴이 떨어지고, 체중 설정값 자체가 위로 밀려 올라갑니다. 멜라토닌이 렙틴 민감도를 높이고 코르티솔을 낮춘다는 최신 근거(p380)는, 왜 숙면 부족이 다음 날의 식욕까지 통째로 흔드는지를 설명해줍니다. 결혼 후 남성의 테스토스테론은 낮아지고 여성의 에스트로겐은 높아진다는 관찰(p376)도 같은 시스템의 다른 단면입니다 — 삶의 큰 전환이 호르몬 지형을 바꾸고, 그 변화가 다시 식욕과 체중 설정값에 영향을 미치는 순환 구조입니다. 그리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 초콜릿이나 비스킷의 유혹을 거절하기 유독 힘든 것도 의지 부족이 아니라, 자율신경이 만들어내는 스트레스 반응 때문에 사고 능력 자체가 떨어지기 때문입니다(p406).
그렇다고 이 책이 손 놓고 있으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수면을 지키고, 알코올 섭취를 줄이고, 단백질 위주로 포만감 신호를 살리고, 정제 탄수화물·설탕 섭취를 조절하는 것 — 이 네 가지는 의지력이 아니라 몸의 신호 체계 자체를 정상으로 되돌리는 실질적인 지렛대로 책 전반에서 반복해서 강조됩니다. 다이어트를 “얼마나 안 먹을 것인가”가 아니라 “몸이 보내는 신호를 어떻게 되살릴 것인가”로 바꿔 생각하는 것, 그것이 이 책이 건네는 가장 실용적인 제안입니다.
책을 덮고 나면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우리는 그동안 다이어트를 제대로 이해해온 걸까요, 아니면 판매자의 언어를 의심 없이 받아들여온 걸까요. 이 책이 보여주는 것은 결국, 살이 찌고 빠지는 것은 의지력 대결이 아니라 몸이라는 정교한 시스템과의 대화라는 사실입니다. 그 시스템을 이해하는 순간부터, 다이어트는 자신을 몰아붙이는 싸움이 아니라 몸의 신호를 읽는 일이 됩니다.
다이어트에 몇 번이고 실패해본 사람일수록, 그 실패의 원인을 스스로에게서만 찾아온 경우가 많을 겁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그 화살표의 방향이 조금은 바뀝니다. 문제는 내가 아니라, 내가 그동안 몰랐던 몸의 언어였다는 쪽으로요. 다음에 다시 다이어트를 시작하게 된다면, “이번엔 얼마나 참을 수 있을까”보다 “지금 내 몸의 신호 체계는 어떤 상태일까”를 먼저 묻는 것에서 출발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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